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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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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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2008년 7월 한국 청소년 야구 대표팀이 제23회 세계선수권에 나섰다. 장소는 캐나다 에드먼턴. 8년 전 추신수와 이대호, 김태균, 정근우, 이동현 등이 주축이 된 한국이 세계선수권 정상에 오른 바로 그 도시였다.


대표팀엔 당시 고교 4대 유격수로 불렸던 1990년생 김상수(경북고), 오지환(경기고), 허경민(광주일고), 안치홍(서울고)이 포진해 있었다. 그 대회에선 오지환이 1루, 안치홍이 2루, 김상수가 3루, 허경민이 유격수를 주로 맡았다. 4대 유격수 중 수비력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던 허경민이 자신의 포지션을 지킨 것이다.


외야엔 정수빈(유신고)과 박건우(서울고) 등이 있었다. 서울고 박건우는 2007년 대통령배 결승에서 3루수로 나와 송구 실책을 두 번이나 범한 뒤 ‘입스’에 걸려 외야수로 전향한 아픈 기억이 있었다. 에이스 정찬헌을 앞세운 광주일고를 상대로 9회말 투아웃에 역전을 허용한 서울고 이형종이 눈물을 흘리며 공을 던진 바로 그 경기다. 허경민이 광주일고의 주전 유격수였다. 정수빈은 당시 약체였던 유신고를 투타에서 이끄는 선수였다.


대표팀은 미국과 벌인 결승에서 성영훈(덕수고)의 무사사구(9탈삼진) 완봉 역투에 힘입어 7대0으로 승리하며 정상의 감격을 누렸다. 2회말 내야안타로 출루한 정수빈이 투수 보크와 도루, 상대 포수의 실책으로 홈을 밟아 선취점을 뽑은 한국은 3회 오지환의 적시타로 추가점을 올린 뒤 5회엔 안치홍의 2타점 3루타 등으로 4점을 뽑아내며 승부를 갈랐다.


정수빈은 쿠바의 야시엘 푸이그과 함께 외야수 부문 대회 올스타에 뽑혔다. 4강 쿠바전에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가 왼쪽 손가락뼈가 부러졌는데 테이핑을 한 채로 출전을 이어갔다. 박건우는 호주와의 예선 2차전(6대1 승)에서 승리에 쐐기를 박는 3점 홈런을 때렸다. 허경민도 주전 유격수로 우승에 힘을 보탰다.


박건우는 작년 12월 구단 유튜브 채널 ‘베어스포티비’에 허경민·정수빈과 출연해 “대회가 끝나고 쿠바 친구들이 경민이 방에 와서 방망이와 글러브를 달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며 “그때 경민이가 여기 있지 말고 내 방에 가라고 해서 쿠바 친구들에게 장비를 다 뺏겼다”며 웃었다.


허경민은 “그때부터 내가 수비 센스가 있어 내 장비를 지켰다”며 “푸이그랑 친해졌는데 지금은 연락이 잘 안 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정수빈은 “내가 가장 늦게 대표팀에 합류했는데 삭발하고 가는 바람에 처음에 애들과 어울리기가 어려웠다”는 추억을 떠올렸다.


박건우와 정수빈은 초등학교 때 배터리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정수빈이 다닌 수원 신곡초와 박건우의 역삼초가 제주도로 전지훈련을 갔는데 그곳에서 연합 팀을 이뤄 제주 신광초랑 경기를 했다고 한다. 당시 정수빈이 투수, 박건우가 포수를 봤다.


2008년 에드먼턴 청소년 세계선수권은 두산 베어스의 ’1990 트리오'가 한 팀으로 호흡을 맞춘 첫 대회가 됐다. 그리고 그해 열린 2009 신인 2차 드래프트에서 허경민이 1번, 박건우가 2번, 정수빈이 5번으로 두산에 지명됐다(세계선수권 MVP였던 성영훈은 두산에 1차 지명을 받았지만 프로 입단 후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다가 2018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에드먼턴 키즈’로 끈끈한 우정을 자랑했던 1990년생 ‘3총사’는 함께 꿈을 키우며 냉혹한 프로의 세계를 헤쳐나갔다.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고, 밥도 사주면서 같이 주전으로 활약할 그날을 기다렸다.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이는 정수빈이었다. 데뷔 시즌이었던 2009년 85경기에 나서 타율 0.264, 17타점을 올렸다. 2011시즌엔 128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5, 38타점으로 활약했다. 어느덧 그는 ‘잠실 아이돌’로 불리기 시작했다. LG와 벌인 2013년 플레이오프에선 결정적인 장면마다 안타를 쳤고, 신들린 듯한 수비로 팀을 구해내며 팀을 한국시리즈로 끌어올렸다.


허경민은 일찌감치 경찰야구단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고 2012시즌부터 본격적으로 경기에 나섰다. 꾸준하게 1군 경험을 쌓아나가며 성장을 거듭했다.


박건우는 셋 중에서 가장 늦게 1군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허경민보다 1년 가량 늦게 경찰 야구단에서 병역을 해결한 그는 2013시즌부터 간간이 1군 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90 트리오’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은 2015년이다. 2008년 세계선수권 이후 처음으로 세 명이 함께 우승을 일군 의미 있는 해가 됐다. 두산은 ‘젊은 피 3인방’의 활약에 힘입어 2015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꺾고 우승하며 14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이들 셋에겐 눈부신 가을이었다. 정수빈은 한국시리즈 MVP로 뽑힐 만큼 맹활약했다. 타율 0.571에 홈런 1개, 2루타 3개 등을 몰아치며 5타점을 올렸다. ‘가을 남자’ 정수빈의 전설이 시작된 해였다.


허경민은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인 23안타를 몰아쳤다. 한국시리즈 성적은 타율 0.474, 6타점이었다. 시즌 종료 후엔 프리미어12 대표팀에 선발돼 생애 첫 태극마크도 달았다.


박건우는 연장 접전을 펼친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대타로 나와 자신의 포스트시즌 첫 타석에서 끝내기 안타를 치고 우승의 서막을 올렸다. 한국시리즈 3차전에선 결승타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이들은 우승 후 “프로에 와서 함께 그려왔던 소원을 이뤘다”며 기뻐했다.


2016시즌엔 박건우까지 주전을 꿰찼다. 허경민은 144경기 전 경기에 나서며 타율 0.286, 81타점을 올렸고, 박건우는 132경기에 출전해 타율 0.335, 83타점으로 공격을 이끌었다. 타율 0.242로 부진했던 정수빈은 한국시리즈 주전에서 밀렸다.


NC와 벌인 2016 한국시리즈에서 허경민은 타율 0.353, 5타점으로 2년 연속 큰 무대에서 활약했다. 3차전에서 3타점, 4차전에선 2타점을 올렸다. 박건우는 3차전에서 2타점 활약을 펼쳤다. 두산이 4전 전승을 거두며 ‘3총사’는 또 한 번 우승의 감격을 함께했다.


정수빈이 2016시즌이 끝나고 경찰 야구단에 입단하며 셋은 약 2년간 함께하지 못했다. 두산은 2017 한국시리즈에선 KIA에 밀려 준우승에 만족했다. 2017시즌은 박건우가 타율 0.366, 20홈런 78타점 20도루로 개인 최고 활약을 펼친 시간이었다.


정수빈은 2018년 9월 7일 전역해 두산에 합류했다. 복귀하자마자 안타를 쏟아내며 맹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이해에도 두산은 한국시리즈에서 SK에 패하며 2위에 그쳤다. 24타수 1안타에 그친 박건우의 한국시리즈 부진이 뼈아팠다.


2019시즌은 ’90 트리오'가 3년 만에 풀타임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됐다. 정규시즌에서 팀 주전으로 활약한 셋은 키움과 벌인 한국시리즈에서 경쟁하듯 좋은 모습을 보이며 3번째 우승을 함께했다.


정수빈은 1차전 6회 1사 만루 위기에서 키움 김혜성의 우중간 외야 타구를 수십m 뛰어가 잡았다. 시리즈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그는 한국시리즈에서 타율 0.375의 정교한 타격을 뽐냈다.


가을에 강한 허경민은 3-5로 뒤지던 2차전 9회 선두 타자로 안타를 때리며 출루해 대역전극의 서막을 올렸다. 타격전이 벌어진 4차전에선 3타점을 올리며 우승의 주역이 됐다.


두 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포스트 시즌에 약했던 박건우는 1차전에선 무안타에 그치고도 상대 실책으로 출루해 두 차례 홈을 밟았고, 2차전에선 끝내기 안타를 때리는 ‘해결사’로 거듭났다.


그들은 2019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스포티비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허경민은 “건우와 수빈이가 내가 힘들 때 날 챙겨줬다. 건우가 힘들 때는 수빈이랑 내가 감싸줬고, 수빈이가 부상으로 빠졌을 때는 건우랑 ‘우리가 잘 버텨보자’고 약속했다. 그만둘 때까지 두산 유니폼을 같이 입고 그만뒀으면 좋겠다.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수빈은 “앞으로도 90년생 선수들이 내년에도, 그다음에도 항상 이렇게 가을 야구를 하면서 같이 우승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박건우는 “친구들이 밥도 잘 못 먹고 있던 나에게 찾아와 같이 밥 먹으러 나가자고 챙겨주고 그랬다. 정말 고맙다”고 마음을 전했다.


이들이 이렇게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을 강하게 어필한 데에는 2020시즌이 끝나고 정수빈과 허경민이 나란히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리는 상황 때문이었다. 이번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박건우는 ’90트리오' 단체 대화방에 과거 셋이 함께한 사진들을 하나씩 올리며 “끝까지 좋은 추억을 남기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2020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은 NC에 2승4패로 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했다.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두산 팬들은 FA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허경민·정수빈 뿐만 아니라 오재일과 최주환, 김재호, 유희관, 이용찬 등 7명의 선수가 FA를 신청하면서 두산 구단 입장에선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기업이 재정난에 처한 것도 두산 팬들의 걱정을 자아냈다. ‘3인조’의 해체가 눈앞에 와 있는 듯했다.


하지만 두산은 예상을 깨고 허경민에게 7년 최대 85억원(선수옵션 3년 30억원 포함)의 대형 계약을 안기며 프랜차이즈 스타를 잡았다. 허경민은 “2009년 두산에 입단해 12년째 뛰고 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구단이 정말 영광스러운 계약 조건을 제시해주셔서 결심할 수 있었다”며 “FA가 된 후 ‘팀에 남아달라’는 팬들의 댓글을 읽으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사랑받아도 되는 선수인가 싶었다. 내게 주어진 7년의 시간 동안 최대한 보답하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두산에 잔류한 허경민은 곧바로 친구인 정수빈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매일 연락하며 두산에서 함께하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정수빈도 16일 6년 56억원에 두산 잔류를 결정했다. 허경민이 7년, 정수빈이 6년 장기 계약을 맺으며 두 친구는 은퇴할 때까지 두산 유니폼을 입고 같이 그라운드를 누빌 가능성이 커졌다.


정수빈은 “경민이가 귀찮을 정도로 어디에 가면 따라오더라”며 “경민이의 설득이 어느 정도 잔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건우는 그냥 짧게 ‘같이 하자’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 ‘원클럽 맨’, ‘베어스 맨’이 된 것 같아 영광스럽다”고 소감도 전했다.


청소년대표팀에서 세계선수권 우승을 함께 일군 동갑내기 세 친구가 프로 무대에서도 이렇게 오랜 시간 한 팀에서 뛰며 ‘왕조’의 주역으로 활약하는 스토리는 흔치 않을 것이다. 두산이란 팀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최근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룬 세 친구 중 둘은 이제 운명을 함께하게 됐다. 나머지 친구인 박건우는 2022시즌이 끝나고 FA 신청 자격을 얻는다. 세 친구의 동화 같은 이야기는 어떻게 또 이어질까. 베어스 팬들은 일단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시즌을 기다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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